1908 러시아 퉁구스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읽어보다 테슬라라는 인물을 보게 되었다.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일물은 아니지만 전자전공을 전공한 나로서는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좀 더 알아보
기 위해서 자료를 찾는 중에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였다.바로 "백투터 퓨처"에서 나오는
타임머신 같은 현상을 일찍이 발견하였다는 것이다.이게 진실이라면 그 결과물은 누가
가지고 있으며 또 어떻게 이용할려고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좀 더 자세하게
테슬라라는 천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의 일대기를간략히 간추려 보면 아래
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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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는 어린시절부터 특이했다, 한번 읽은 책은 단어 하나하나까지 외워버렸으며
그릇이나 찻잔의 속부피를 계산하고 있곤 했다, 후에는 자신의 정신적인 눈으로 기계를 발명하
기도 했다, 니콜라는 1895년 7월10일 크로아티아의 조그만 도시 스밀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부터 그의 특이한 재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그 기발한 재능은 당시에 형 다니엘이 죽고
상심한 부모님을 위로하는데 쓰이곤 했다. 입학을 했으나 ,그는 그 과정을 시시하다고 느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그의 관심은 잘 꾸며진 물리학 실험실에 쏠렸다.
그는 거기서 지금까지의 것보다 훨씬 개선된 기능을 가진 새로운 원동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그는 그의 물건을 시각화하는 범상치 않는 능력을 인지 하게 된다, " 나의 방법은
다르다, 나는 곧 작업에 착수하지는 않는다,내게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나는 곧 이미지로
그것을 개발하기 시작한다,설계를 바꾸고 개선을 하고 ,만들어진 기계를 머릿속에서 작동시켜
보는것이다
그러나 테슬라의 천재성은 자연과학 분야에만 한정되는것이 아니었다, 언어나 문학에도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영어,불어,독어,이탈리아어, 이외에도 몇몇 슬라브언어를 구사할수 있었
다, 말년에는 12개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고 알려져 있다,전통에 따라 그리스정교목사가
되길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등과정을 마친 후 그라츠로 가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875년 테슬라는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의 새로운 발명품인 그람기계로(GRAMME MACHINE)로 실험을 하는 유명한 푀실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그는 강한 불꽃전류로인해 에너지 손실이 큰 그 기계를 개선하고 직류대신 교류로
작동을 해보고자 하였다 그의 이 생각은 몇년 후 자신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중 하나-교류발전기
-를 만드는데 기초가 된다
1881년 공부를 마친 테슬라는 부다페스트의 한 전화상회에 직장을 얻었다,
어느날 부다페스트의 시립공원을 거닐던 그는 세상을 바꿀만한 전광석화와도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전류를 수백킬로미터 떨어진곳으로 운반하는것을 가능케하는, 유도모토(INDUCTION MOTOR)
라고도 알려진 교류모터의 구상이었다.에디슨의 추천으로 테슬라는 1884년 파리에서 미국으로
건너가고 그 둘은 곧 같이 일하게 된다. 테슬라는 또한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자신의 연구를
밀어주는 후원자를 얻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두사람은 성격,열정 그리고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정반대였다, 에디슨은 직류에 모든것을 걸고 있는 데 반해 테슬라는 교류를 선호했다.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에디슨은 교류로 만든 전기사형기를 만든다.경쟁자인 테슬라의 교류발
전이 위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무시무시한 기계를 만들게 된것이다.사리사욕때문에 극악
한 기계가 만들어 졌다는건 에디슨 역시 돈에 얶메인 사업가일 뿐이어서 그를 천재라고 부르지
않는 것 같다.)
에디슨과는 달리 테슬라는 자신의 많은 발명품에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다.그의 생각은 인류가
다같이 공유해야한다는 것이었다.두 사람 사이가 금가는것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일년동안의 공동
작업 끝에 테슬라는 사표를 내고 만다.887년 그 발명가는 뉴욕에 "Tesla Electric Light Company"
를 설립했다.한결같이 밤낮으로 일했고 1887년과 1890년 사이에 40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그는 강의를 하기 시작했고 그 명확성과 이해도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점차로 테슬라는
학계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산업계 거물 조지 웨스팅하우스도 그를 주목했다.새로운 기술에
대한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던 웨스팅하우스는 별 손실없이 먼 곳으로 운반이 가능한 교류시스템에
관심을 보였다.그러나 문제는 이미 많은곳 에 세워졌거나 세워지고 있는 직류발전소였다,
또한 에디슨 상회와 톰슨-휴스턴 상회는 교류에 대해 대대적으로 대항하고 있었다.모든 상황이
테슬라에게 불리하게 시작되긴 했으나 교류시스템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설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 니콜라 테슬라는 자신의 특허를 팔아 부자가 되어 있었고 1881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1900년, 시대를 앞서가는 이 학자는 석탄이나 석유같은 화석연료의 연소에 대한 자신의 가장 중요한
논문중 하나를 썼다.그에 따르면 지구를 대재앙으로 이끄는것을 막기 위해서 인류는 이제 재생되는
에너지원에 대한 연구에 투자를 해야했다.1898년 테슬라는 라디오파에 대한 실험을 하기 위해 콜로라
도 스프링스로 향했다, (투자가 계속 되었다면 레이다가 40년은 먼저 발명되었을 상황아닌가~!)
은행가 J.Pierpont Morgan이 후원자로서 동참했으나 구글리엘모 마르코니가 모르스신호를 대서양을
건너 송신했다는 뉴스를 듣고 후원 약속을 취소했다.이후 테슬라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1936년
무렵에는 거의 잊혀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니콜라 테슬라는 미국으로 이민해 온후 거의 모든 시간을
호텔과 실험실에서 보냈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1843년 1월 뉴욕의 한 호텔방에서 숨을 거두
었다, 그의 이미지 시각화 능력이 얼마나 큰 손실인가 하는 것은후에 밝혀진다, 재정적인 이유로해서
구현될수 없었던 발명품들은 결국 테슬라 자신의 머리속에만 남아 있는 아까운 유산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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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가 머리속으로 생각했던 이론을 바탕으로 무시무시한 실험이 이루어 졌습니다.바로 퉁구스카
사건에서 제기한 4차원공간이동에 관한 실험이었습니다.그 이야기는 당시에 많은 충격을 주었던것
같습니다.만약 이런 실험결과가 진실이고 있었다면 정말 테슬라는 불운한 천재입니다.자신의 큰 업적에
비해 명예와 부를 누리지 못하고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커다란 업적이 있는데 왜 우리에게선 잊혀지고 회자되지 못하고 있는걸까요? 너무 시대를 앞서
갔기에 다른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이단 취급을 받았지는 않았을까요?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물
을 선사하였기에 그를 잊혀진 천재로만 기억하는 걸까요??그 이야기를 시작 하도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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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3월 12일 평소에 테슬라와 친분이 있던 뉴욕 헤랄드 신문기자는 커피를 마시려고
인근 카페를 방문 하였다가 그곳에서 테슬라를 만났다고 한다.처음에 테슬라가 자신을
못알아보고 어깨가 아픈지 이를 만지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본 기자는는 무슨일이
있었냐고 묻다 테슬라가 몇백만 볼트의 전류를 어깨에 맞았다며
자칫 잘못했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는 말을 하자 수첩을 꺼내 그가 말하는 내용을
빠짐없이 적기 시작 하였다고 한다.당 시 테슬라가 말한 내용은 테슬라 코일에서
발산된 강력한 전류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데 영향을 줬다는 것이었고 그는 일
주일간 조수와 함께 이와 같은 실험을 계속 진행하다 전류를 어깨에 맞고 그 과
정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한꺼번에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이 것을 계기로 테슬라는 타임머신을 연구했다고함,그의 이론인즉,,과거 부터 미래의
종말의 시간까지의 모든 시간이 하나로 겹쳐 있다고 한다,마치 하나의 시간대에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집중시켜놓은 형태라고한다.그리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은
실험으로 나타났습니다.연구를 꼐속하면서 작은 물체를 안보이게 하는데 성공하고 이는
미국 정부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어 군에서 실전에 응용하기 위해 계획하였고 이는 무지개
작전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결론은 테슬라 코일 4개를 작동시켜 자장을 만들고 그 자장
으로 소위 ‘과도공간기포’(Hyper Space Bubble)를 물체 주변에 조성해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원리는 함선 주변에 아주 강력한 자장을 만들어 감싸면 태양빛
같은 광선이나 레이더 등에 사용하는 전파는 마치 아지랑이처럼 굴절하게 되어 보이지
않게 되며, 혹시라도 적이 어뢰를 발사하면 그 진로가 굴절되어 옆으로 빗나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실험은 마치 보이지 않는 옷을 몸에 입히는 것처럼 배가 적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다.
드디어 1943년 여름, 뉴욕 해군 항만기지 소속 엘드리지(USS Eldridge DE 173) 경구
축함에 75Kwh(1500억V로 승압)발전기 두 대,자장을 만드는 테슬라 코일 4개를 위시한
여러 전기기구를 가득 싣고 필라델피아 해군 항 앞바다에서 실험이 시작됐다. 1943년
7월 22일 오전 9시에 함상의 발전기를 발동시켰고 곧 선박 주변이 초록색 안개로 가려
지면서 선박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얼마 후 안개 자체가 걷히면서 선박도 함께 사라
져 버렸다.이를 주시하던 해군 고위 장교들이나 과학자들은 선박이 레이더망만 잡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도 볼 수 없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해했다. 얼마 후 발전기를
끄도록 명령하자 다시 초록색 안개가 서서히 나타났다가 그 안개가 가라앉으면서
엘드리지 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육지에 있던 관련자들이 승선해 보니 무언가
매우 잘못되어 있음을 알았다. 갑판에 있던 선원들은 얼이 빠져 있었고, 매스꺼움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그래서 당국은 선원들을 모두 교체시키고, 앞으로는 레이더에만
감지되지 않게 만드는 방향으로 실험을 변경했다.
10 월 28일 오후 5시 15분, 다시 실험이 시작되었다. 발전기를 발동하고 테슬라
코일이 작동하여 전기자장이 일어나자 함선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해 뱃머리만 약간
보일 정도였다. 얼마 동안은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지만 갑자기 선박에서 파란불이
번쩍 일면서 배 전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불과 수초 사이에 함선은 약 400킬로미터
남쪽에 있는 버지니아 주 노포크함 앞바다에 수 분 동안 나타났다가 다시 필라델피아
해군기지 앞 바다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모두 181명이 승선했었는데 그중 120명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으며, 40명은 죽고 21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생존자 중 일부는 미쳐 버렸고 산 사람 모두는 신체적으로도 매우 심한 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일은 그중 다섯 명이 함선의 철판에 박혀 버려
철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애초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게 하려던 실험이 뜻하지 않은 선박과 선원 전체의 텔레
포테이션을 맛보는 사고로 끝을 맺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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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으로 1908에 일어나 퉁구스카 사건에 대한 가설을 세웠을지도 모르겠죠.누차 강조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이 어마어마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테슬라가 희생양이 됐고 잊혀진 천재 과학자로
남겨졌던 것이다라고 생각해봅니다.지금도 어느 곳에서 그의 연구를 이어 받아 실험이 계속진해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말했듯이 이건 인류를 위해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테슬라의 연구
결과의 산물로 얻어진 엄청난 병기를 한 사람, 한 국가를 위해서만 쓰여질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
다.그 힘을 가진 자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인 것이기 때문이죠.

















